있을 때 잘 하지...

평소 자살자에 관해선 전후사정이 어땠든 못났다고 상당히 폄훼하는 나로서는 솔직히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 추모를 보내긴 하지만 그냥 그걸로 끝이었다.

아마 전 세계 역사를 통틀어 뒤져서 자살한 대통령은 아마 우리나라 밖에 없을 것이라고...그렇게 약간 부끄럽게 생각하기도 했던 마음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요즈음 뉴스를 보면서 전국적으로 추모 행렬이 생기고, 정치랑은 별 연관이 없어 보일 것 같은 사람조차 진심으로 눈물을 흘리고, 애도를 하고, 조문을 드리며 안타까워 하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아...그 분이 정치인이든 아니든 그런걸 떠나서 진정으로 사람 자체로서 훌륭한 분이셨던건 아닐까?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해서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슬퍼한다면 그 사람은 진정 훌륭한 삶을 살아왔던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던 와중에 우연히 인터넷에서 그동안 비공개로 있던 노 전 대통령의 생전 사진들을 모아놓은 것을 보았다.


사진을 보면서 속으로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고, 있을때 잘하지. 이미 돌아가셨는데 지금 이러는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라는 약간 발칙한 생각을 한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무덤덤하게 사진을 주르륵 훑어 내려갔다.

대부분은 노 전 대통령이 서민과 함께하는 정겨운 사진들이었다.

주민들과 함께 별 볼일 없는 안주에 막걸리를 같이 마시거나, 꼬마 아이의 사탕을 한 입 뺏어먹는 거나, 평범한 촌부처럼 자전거를 끌고 다니는 모습들...그런 사진들이었다.

그러다가 마지막 사진을 보고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릴뻔 했다.

친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론 지난 8년간 거의 단 한번도 흘려본적이 없던 그 눈물 말이다.


그 사진은...

노 전 대통령이 허리를 90도로 숙여 인사를 하는 사진이었는데 첫번째 대상은 의경 정도의 앳된 나이로 보이는 경찰이었고, 두번째 대상은 고등학생들로 보이는 무리들이었다.

그래 여기까지만 해도 괜찮았다.

물론 노 전 대통령의 나이로 봐선 자식뻘도 안 되는 나이겠지만 고등학생들도 어쨌건 덩치로만 봐서는 어른이랑 별 차이가 없고, 외국에선 18세가 되면 어른 대접을 해주니까.

하지만 마지막 사진이 내 눈물을 핑돌게 만들었다.

그 사진은 노 전 대통령이 허리춤에도 채 닿지 않는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아주 어린 아이들에게 깊이 허리를 숙여서 인사를 하는 모습이었다.

노인이 어린 아이를 향해 허리와 머리를 숙이기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도 진심을 담아서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보통은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거나 한 번 껴안아 주거나 하지, 저런 행동을 보이진 않을테니까.

하지만 진심이 담겨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 인사는, 올망졸망하게 모여있는 유치원생들을 향한 그 인사는 내 눈시울을 뜨거워지게 했다.

아 저분은 만인지상의 위치가 아니라 진정으로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해 있었구나.

정치인이든 아니든 그런걸 떠나서 순수하게 인간적으로 매력을 느꼈다.

그리고 그런 분이 이렇게 덧없이 세상을 떠났다는 것에 대해 진한 아쉬움과 허탈함을 느꼈다.

왜 수백만의 사람들이 조문을 하러 왔는지 약간이나마 이해를 할 수가 있었다.





비록 늦었지만, 많이 늦었지만 있을때 잘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들지만 지금이라도 당신이라는 사람을 조금이라도 알게 돼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디 좋은 곳으로 가시길 바랍니다.

by 루이젤 | 2009/05/27 20:17 | 반성록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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